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andel)/조지 프레드릭 헨델(George Frideric Handel)
1685년 2월 23일~1759년 4월 14일, 독일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활동한 바로크시대 작곡가이다. 헨델은 프로이센의 할레(현재 독일 영토)에서 태어났다. 1712년 이후 런던에 정착하여 앤 여왕의 비호를 받아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1726년에는 영국에 귀화하여, 죽을 때까지 영국에 살면서 오페라, 오라토리오 등 많은 기악 작품을 남겼다.
헨델의 일생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린 바흐와 자주 비교되고는 한다. 두 사람은 아주 극과 극의 삶을 살았다. 먼저 기본적으로 음악 스타일부터 달랐다. 바흐의 작품이 매우 진중하고 논리적이었다면 헨델의 작품은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감성적이었다. 삶 자체도 달랐다. 전통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선택의 여지없이 직업 음악가로서 살아온 바흐와 달리 헨델의 아버지는 그가 법률가로 크길 바랐다. 그러나 끊임없이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헨델은 18살때 자신의 진로를 굳혔다. 자식을 스무명이나 낳았던 바흐와 다르게 헨델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또 바흐가 조국인 독일 밖으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는 반명 헨델은 이탈리아, 프랑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메트로폴리탄이었다.
헨델은 결국 영국에 귀화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덕분에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독일 식 이름으로 하면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영국식 이름으로 하면 '조지 프레드릭 헨델'이다. 자유로운 영혼인 헨델과는 달리 독일의 음악이 지나치게 경건해서 서로 스타일이 맞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추측된다. 또 당시 영국 런던이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니까 헨델 입장에서는 조금 더 큰물에서 놀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헨델은 오페라 공연을 하러 영국을 방문했을 때 영국 청중들의 환호에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오페라를 본격적으로 흥행시키기 위해 영국으로 귀화했다는 의견이 현재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당시 영국인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했던 오페라의 제목은 '리날도'이다.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누구나 들어보면 한번씩은 들어본 곡일 것이다. 특히 그 중 아주 잘 아는 곡 하나는 주인공인 리날도 장군과 사랑에 빠진 알미레나가 부르는 노래이다. 바로 영화 '파리넬리'에서 주인공 파리넬리가 부른 '울게 하소서'라는 곡이다. 그리고, 모두가 알만한 곡이 하나 더있는데 바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나무들을 바라보며 부르는 평화로운 아리아 'Ombra Mai Fu(나무그늘 아래서)'이다. 이 곡은 특히나 나도 좋아하는 곡이다. 멜론과 카카오 뮤직에 이중으로 담고 있을 정도로 머리가 복잡할 때 즐겨 듣는 노래이기도 하다. 헨델이 53살에 작곡한 것이라 하는데 5회까지만 공연되고 자취를 감췄다 한다. 이후 이 곡은 19세기에 재발견되어 '헨델의 라르고'라는 곡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헨델과 같은 독일 태생의 세계적인 카운터 테너, '안드레아스 숄'이 부른 'Ombra Mai Fu', 느낌이 색다르다. 안드레아스 숄도 너무나 유명하고 훌륭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개인적으로는 '필립 자루스키'의 버전을 더 좋아한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헨델은 왜 음악의 어머니라고 불릴까?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본격적인 음악 체계가 잡혀 가는 바로크 시대에서 그의 곡들이 바흐에 비해 부드럽고 대중이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바흐의 음악이 대위법을 사용한 구조적인 음악을 추구했다면 헨델의 음악은 그와 정반대로 선율과 화성을 강조한 감성적인 느낌을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남과 여,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뉘게 되었다. 헨델의 조국인 독일 입장에서는 바흐와 헨델, 즉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모두 독일 태생인데 헨델이 영국으로 귀화하는 바람에 굉장히 억울했을 것이다. 반면 영국 입장에서는 헨델이 죽고 98년 후 '에드워드 엘가'가 태어날 때까지 이렇다 할 음악가를 배출해 내지 못해 정말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
헨델의 이야기를 좀 더 깊게 살펴보면 그 역시 파란만장한 삶의 기간도 많았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의 방해 공작으로 운영하던 오페라 극장이 잘 안되어서 여러 차례 파산을 겪기도 하였고, 과로를 하다가 52살에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지기도 하여 걸을 수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수도 없는 반신불수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헨델 생애 가장 절망적인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헨델은 불굴의 의지로 병을 이겨냈다고 한다. 흥행에 실패했던 오페라가 아닌 오라토리오 작곡으로 눈을 돌렸다. '오라토리오'는 성경을 소재로 하여 몇 명의 독창자 그리고 합창단 노래와 오케스트라 연주가 어우러진 음악이다. 헨델이 작곡한 20곡의 오라토리오 중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은 전부 56살에 쓰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메시아'. '메시아'는 헨델이 살아있는 동안 34회나 공연 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던 작품이다. 당시 신문에서는 이곡에 도취한 청중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다며 마음과 귀를 사로잡은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했다. 헨델은 '메시아' 하나로 재기에 성공했고, 오라토리오 작곡가로 확고한 자리를 지키며 이전의 파산에서 회복하여 편안한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헨델은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등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섰다고 한다. 그는 이 메시아라는 곡을 가지고 자선 음악회를 열었고 그때마다 직접 지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기금이 모이면 모조리 자선 사업에 기부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음악의 어머니'의 진짜 자애로운 어머니 같은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헨델의 '메시아' 공연을 보고 "이 음악은 굶주린 자를 먹여주고, 벌거벗은 자에게 옷을 주었다. 아울러 얼마나 많은 고아를 키웠을까!"하고 감탄하기도 했다 한다.
헨델 생에 마지막 연주가 된 곡도 '메시아'였다. 이곡을 지휘하던 헨델은 마지막 곡인 '아멘 코러스'가 끝나자 그대로 쓰러졌고, 4월 11일 겨우 정신을 차린 다음 유서에 '궁핍한 음악가와 그 가족에게 천 파운드를 기부한다.'라는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사흘 후인 4월 14일,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의 소원대로 게오르그가 아닌 조지라는 이름으로 웨스터민스터 성당에 묻히게 되었다. 헨델의 나이 74살이었다. 나름 기복이 심한 인생이었지만 비발디나 바흐의 마지막을 떠올려 봤을 때 헨델은 매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자료참고 : 위키나무, 개인소장도서 : '위대한 음악가 30인의 삶과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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