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보뇌르 샤넬 Gabrielle Bonheur Chanel
- 1883년 8월 19일 ~ 1971년 1월, 브랜드 '샤넬'의 설립자
가브리엘 샤넬 (사진 : 샤넬공식홈페이지)
샤넬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의 오벨뉴 지방, 소뮈르에서 출생하였다. 12세에 모친이 별세하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버려져 보육원과 수도원을 전전하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코코'는 애칭으로 시골 마을인 물랑에서 바느질하는 노동자로 고아원을 나온 샤넬은 당시 그녀를 후원한 한 장교에 의해 예능계에 재능을 각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샤넬 (사진: 샤넬공식홈페이지)
가수를 지망하면서 카바레에서 노래하던 그녀는 'Ko Ko Ri Ko'와 'Qui Qu'a vu Coco Dans Le Trocadero'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자신의 예명인 '코코'를 앞에 붙여 사용했습니다. 그 후 예능계의 길을 잠시 접고 당시 교제중이던 장교인 에튀엥느 발장에 의해 파리 근교로 이주하여 사교계로 이용되던 발장의 목장에서 머무릅니다. 그곳에서 따분한 시간을 보내던 샤넬은 모자의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발장의 후원으로 1909년에 마르젤브 거리 160번지에 모자가게를 개업합니다. 1910년에는 파리의 캉봉거리 21번지에 '샤넬모드'라는 모자 전문점을 개업한 샤넬은 이때 당시 발장과 헤어져 평생 연인으로 지낸 영국의 청년 사업가인 아서카펠과 교제를 시작합니다. 샤넬모드의 개업자금은 카펠의 후원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쉬어가며 알아보는 샤넬 로고의 뜻과 의미]
샤넬을 대표하는 로고는 말할 필요도 없이 두개의 C가 서로 등을 대고 겹쳐져 잇는 로고이다. 직사각형으로 얽힌 금빛 버클과 가죽이 안으로 지나가는 체인, 연속적으로 다이아몬드나 헤링본 모양의 누빔 처리 등이 샤넬을 대표하는 이미지이다. 샤넬의 의상에서는 버튼이 그 로고를 대신하고 있는데, 코코(샤넬의 애칭)가 동경하던 장교들의 유니폼에서 영감을 받은 장교들의 둥근 금빛 버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코코가 가장 좋아했던 카모마일(동백꽃) 역시 샤넬을 대표하는 중요한 이미지이다. 그 제조 방법이 특이해 샤넬의 진품과 가품을 구분할 때 이 카모마일 꽃이 달린 제품들은 십게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이다. 동백의 꽃잎 하나하나를 하트 모양으로 잘라 특수하게 샤넬에서 제작된 다리미로 주름을 잡고 꽃 모양을 만들어 작업을 하는데, 언제나 수작업으로만 작엄을 하고 있어 하나의 꽃을 만드는데 한시간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러한 생전의 샤넬을 지금은 칼 파거펠트가 이어받아 전통과 현대미를 조화시켜 놓고 있으며, 조금 더 전위적으로 혹은 캐주얼하게 표현되기도 하여 현대 여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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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드뷜에 2호점을 오픈
◆ 1915년 '메종 드 꾸뛰르'오픈
- 1916년에는 콜렉션을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새로운 디자인과 소재로 화제가 되었다.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카펠과 얼마동안 동거했던 샤넬은 1919년에 카펠이 사고로 사망하자 다시 혼자가 되었다.
◆ 1921년 본점을 캉봉 31번지로 확장
- 샤넬은 조향사 에른스트 보와 함께 자신이 원했던 '여성의 향기가 담긴 여성 향수' 바로 첫 향수인 'No.5'를 출시다. 상징적인 향수 병의 다이아몬드 마개는 파리 방동 광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향수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향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5'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름과 단순한 용기 디자인은 시대를 앞선 모더니즘을 보여주었다.
이때 당시 극작가 였던 장 콕토, 화가인 피카소,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 등이 주최한 살롱에 출연한 샤넬은 사교계의 거물이 되었다. 당시 화가였던 마리 로랑생이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었는데 샤넬은 이 초상화를 입수하지 못했다. 현재 그 초상화는 파리의 '올랑쥴리 미술관'에서 전시중이다.
1957년 수지파커를 모델로 리차드 아베든이 촬영한 샤넬No5 광고(샤넬공식홈페이지)
◆ 1924년 6년간 교제하던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만난 샤넬은 공작의 보석애호 취미로부터 영향받아 모조 보석을 사용한 쥬얼리를 발표한다. 1925년에는 여성을 위한 트위드 슈트를 선보이며 트위드 소재 생산을 위해 스코틀랜드 공장과 함게 일을 시작했다. 샤넬의 단순하고 활동적인 디자인은 애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그 주변 친구들이 착용했던 스포츠웨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후 샤넬은 공작과 헤어져 여러 디자이너 및 유력자과 사귀었는데 그녀와 사귄 남자들은 급사하거나 파산했다. 이에 샤넬은 불행한 사자자리의 숙명을 가진 여자라 불리기도 했다.
◆ 1926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리틀 블랙 드레스를 선보이게 된다. 당시 미국판 '보그'에 샤넬의 디자인 스케치가 소개되었었는데 잡지에서는 이 미니 블랙드레스를 미래적인 형태로 소개했다. 그 당시 여성들은 검정색 의상을 상복이나 점원 유니폼으로 입었지만, 샤넬은 산업혁명 이후 남성복에서 댄디들에 의해 일찍이 확립된 우아한 블랙 엘레강스를 최고급 여성복에 도입하는 획기적인 시도를 했던것이었다.
◆ 1934년 기업가로 순탄한 성장을 한 샤넬브랜드는 액세서리 부문의 공장도 만든다. 이듬해엔 양장 전문점도 오픈, 1939년엔 약 4천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 하지만 노동인권이 존중되지 않는 노동조건에 항의한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인다. 샤넬은 이때 충격으로 일부 점포를 제외하고는 사업을 접기로 해 일시적으로 은퇴를 한다. 이후 15년간 프랑스의 패션계를 떠나있었다.
◆ 1940년 프랑수가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자 패전국 프랑스에서는 독일에 저항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며 고문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는 자가 부지기수였는데 샤넬은 독일군 장교와 애인관계로 지내면서 그의 비호아래 타락적인 생활을 보냈다.
◆ 1944년 샤를르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군과 연합군이 프랑스를 해방, 샤넬은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고국을 탈출하고 애인과 함께 수년간 스위스 로잔에서 망명생활을 보낸다. 이러한 경위로 현재도 샤넬은 '나치에 혼을 팔아넘긴 매국노'라는 혐오감이 프랑스에서는 강하다.
◆ 1954년 스위스 망명생활을 접고 파리로 돌아온 샤넬은 방도므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릿츠호텔에 거
주하면서 패션계로의 복귀를 준비하다. 매국노라는 경명과 나치 독일에 대한 혐오감이 전쟁이 끝난후 10여년간 샤넬의 발목을 잡아 위상이 약했었다. 이와 반대로 미국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맞물려 그녀의 참신한 패션은 열광적인 선풍을 끌었다.
◆ 1955년 샤넬은 울 소재의 새로운 샤넬 슈트를 발표했는데 미국에서는 '과거 50년간 큰 영향력을 가진 패션 디자이너'로서 모드 오스카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 1971년 거주하던 파리의 릿츠호텔에서 콜렉션을 준비하던 샤넬은 88세로 사망했다. 당시 그녀의 유해는 프랑스를 배신한 행위에 의해 프랑스의 고급묘지에 묻히는 것을 거부당하여 어쩔 수 없이 망명생활을 했던 스위스의 로잔에 매장되었다.
[이후...]
럭셔리 하우스 샤넬은 1983년 칼 라거펠트를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해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시대를 열었다. 독인 출신 디자이너인 칼 라거펠트는 끌로에와 계약을 파기하고, 연봉 100만달러에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계약했다. 1983년 이후 칼 라거펠트의 지휘 아래 샤넬 본래의 헤리티지 스타일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가며 무려 34년 동안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칼 라거펠트는 스텍타클한 패션 쇼 연출로도 유명하다. 예를들면 여성의 자유와 페미니즘 관련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처럼 런웨이를 편친다든가, 19세기 말 낡은 극장의 막이 열리고 펼쳐진 세계는 2033년 극동지역의 한 미래 신도시를 상상한 무대, 2012년 S/S에서는 바닷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패션쇼를 선보였고, 2013년 F/W에서는 거대한 지구 주위를 도는 모델들의 모습은 한편의 지구 환경쇼를 보는 듯하게 꾸며졌다.
어린이 모델 '허드슨 크로닉'은 칼 라거펠트가 진행하는 패션 쇼에 미니 모델로 자주 등장했다. 남성 모델 브래드 크로닉의 아들인 허드슨은 칼 라거펠트의 대자로 2살 때부터 샤넬 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한다. 위사진은 2014년 S/S 오뜨 꾸띄르 컬렉션에서 허드슨 코로닉과 카라 델레바인이 함게 피날레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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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같은 길을 선택하고 있지만, 샤넬 역시 현재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럭셔리 인터넷 쇼핑몰 '네타포르테닷컴'에 쥬얼리를 론칭했으며 뷰티 제품에 이어 패션 제품 등을 통한 본격적인 온라인 비지니스에 나서고 있다. 이제 매장이 아닌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샤넬 제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시대 변화에 맞춰 엄청난 변화를 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자료참고 : 도서 샤넬의 진실, 샤넬홈페이지, 패션미디어 일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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