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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디자이너&브랜드이야기

이세이 미야케-ISSEI MIYAKE

by 파란하늘정원 2017.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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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ISSEI MIYAKE)

 

 

 

 

 

 

1938년 - 일본 히로시마 출생

1964년 - 도쿄 Tama Art University에서 Graphic Art전공

1966년 - 파리 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laCouture Parisienne에서 수학

1964년~1966년 - 기라로쉬에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활동.

1968년~1969년 - 지방시에서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활동.

1970년 - 미야케 디자인 스튜디오 개관.

1971년 - 뉴욕 진출.

1973년 - 파리 컬렉션으로 입성

1976년 - '이세이 미야케와 12명의 흑인 여성들' 프리젠테이션을 도쿄와 오사카에서 개최

 

 

 

 

 

 

 

"나는 패션의 미학을 창조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스타일 그 자체가 아니라 생활에 기반한 스타일을 창조하는 디자이너일 뿐이다."

 

- Issey Miyake -

 

 

"나는 전통으로 돌아가거나 역사를 답습하고 싶지않다.

서구적이지도 않으면서 동양적이지도 않은, 그러나 그 안에서 동서양의 문화가 이루는 독특한 스타일을 지향한다."

- Issey Miyake -

 

 

 

 

 

 

: 'One Life', 'Three Houses'! 그의 이름에서 나오는 특별한 의미처럼, 이세이 미야케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하나의 삶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나는 그의 시대를 함께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이후의 시대는 함께 해 온 사람으로써 꾸준하게 걸어온 열정은 흠잡을 곳 없는 멋진 인생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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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사진: 2017 출시 된 이세이 미야케 여성향수)

 

 

 

그의 지나온 발자취를 대략 살펴보자면, 문화 복장학원 재학 중 컬렉션을 가질 정도였고, 1971년 뉴욕에서 공식적인 컬렉션을 발표한 후 1973년에는 파리로 진출하여 제 1회 미야케 추동 컬렉션을 발표했다고한다. 1976년 시부야 파르코의 세이부 극장에서 '이세이미야케와 12인의 흑인 여성'이라는 제목으로 코스튬 쇼를 발표하여 큰 호평을 받았다고도 한다. 1983년 도쿄에서는 '바디워크전'을 발표, 이후에도 수많은 세계적인 패션관련 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디자이너임을 입증해왔다. 미야케는 패션 디자이너라는 삶을 살기 이해 어려서부터 '질서 정연한' 교육으로 준비했다. 미술대학교, 의상조합학교 등을 거쳐, 기라로쉬의 매종에 어시스턴트로 취업하여, 경험과 실체를 다지고, 지방시 등 여러곳에서 보조 및 디자이너로서의 실력을 쌓아갔다.

 

 

 

 

 

 

미야케는 영어와 불어를 아주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는 1964년 도쿄에 있는 '타마 아트유니버시티(문화복장학원-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 꾸띄르의상조합학교를 졸업했다. 그에게 파리라는 이름은 마법과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파리의 영향을 아주 크게 받아서 그의 머리속은 항상 꿈과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파리는 비틀즈와 팝아트에의해 영향을 받은 자유와 여정을 찾기 위한 세대의 세상이었기 때문인듯하다. 1966년에는 기라로쉬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다가 지방시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1969년 뉴욕에서 제프리 빈의 디자이너를 하기도 했었다.

 

 

 

 

 

 

1970년 뉴욕에서 돌아 온 그는, 도쿄에서 테스타일 디자이너인 마키코 미나가와와 함께 미야케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한다. 그 스튜디오에서 가장 기본으로 오랫동안 유지한 컨셉중 하나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것, 자유를 향한 이상과 신체와 의복의 관계에 대한 탐구였으며, 다른 하나는 진과 티셔츠만큼이나 '민주적이고 편안한' 디자인의 발명이었고 기모노의 전통으로부터 사각형 의복을 개발했다.

 

 

 

 

 

 

1년 후 뉴욕에서 열린 첫번재 컬렉션을 발표한 이세이미야케는 파리진출하게 되면서 솔기와 여밈이 없는 옷으로 자연 친화적일 뿐 아니라 클래식한 '한장의 천'이라는 테마의 컬렉션으로 일본 무사의 갑옷과 여인들의 기모노에서 모티브를 차용하고 일본 전통 오징어 잡이 종이 등과 신사(神社)의 종이접기에서 유래를 읽을 수 있는 플리츠 플리즈는 파리 패션계를 뒤 흔들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전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은 디자이너 가운데 한명인 이세이 미야케, 그의 이름이 낯선 이는 있어도, 주름 잡힌 플리츠 원단의 입체적 디자인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모르겠다면,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 프레젠테이션 할 때마다 입었던 검은 터틀넥을 떠올리면 된다. 그가 100벌이나 갖고 있었던 검은색 상의는 모두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이다.

 

 

 

 

 

 

 

이세이 미야케의 옷이나 가방은 1000만원이 넘는 최그급 명품브랜드처럼 엄두못낼 만큼 값비싸거나 독특한 디자인을 뽐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용적인 일상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방식이 혁신적이다. 특히 1988년에 개발한 플리츠 소재는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컬렉션 "플리츠 플리즈"를 만들어냈다. 주름잡힌 플리츠는 미야케 이전에도 있었지만 미야케가 사용한 방식과는 전혀 달랐다. 이전 플리츠는 재단돼 봉제되기 전 주름을 잡았었고, 미야케는 그와 반대로 의복을 정 사이즈의 2~3배 사이즈로 재단 후 조합한 뒤, 완성된 형태에 주름을 주었다. 이 방식은 크고 느슨한 행태지만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인체의 윤곽을 드러내도록 도왔다.

 

 

 

사진 : 헤렌코리아 / 모델 염정아

 

 

 

주름 잡힌 원단은 가볍되, 여행용 캐리어에 접어 넣어도 전혀 구겨지지 않는다. 게다가 입체적재단으로 활동이 편했다. 세계적 첼리스트 미샤마이스키는 이 같은 이유로 항상 이세이 미야케의 연주복을 입었다.

 

 

 

 

"나는 옷의 절반만 만든다.

사람들이 내 옷을 입고 움직일 때야 비로소 옷이 완성된다"

 

 

라는 미야케의 발언은 옷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사진 : 2017 인스타일촬영

 

 

 

이세이 미야케는 잘 모르더라도 젊은 여성들 대부분 바오바오백이라는 말은 한번쯤 보았을것이다. 2000년 출시한 가방 바오바오백!, 움직임에 따라 작은 삼각형 유닉의 모양이 자유자재로 병형되는 이 가방은, 가볍고 부드러운데다가 안에 넣은 물건에 따라 형태를 바꿀 수 있다. '유연하고 혁신적인'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제품이다.

 

 

 

 

 

 

 

 

 

 

 

 

디자이너에게 ‘옷이란 무엇인가’는 피할 수 없는 질문이다. 이세이 미야케는 그것이(옷이) 인간의 일부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옷이 몸을 구속한다고 믿었고, 결국 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하면 재단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옷으로부터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듯 과학적인 관점을 옷과 결합시킨 최초의 디자이너, 그가 바로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다. 감성과 이성이 적절히 조화된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그는 패브릭과 염색 기법 개발을 통해 풍부한 텍스처와 다양한 컬러를 만들었다.

 

 

 

 

 

플리츠 플리즈 원피스

 

아딸라&이세이 미야케 콜라보

  

   

이세이미야케 워치

 

2017 출시된 여성향수

 

 

 

 

성공의 비결을 묻는 기자단을 향해 들려준 이세이 미야케의 답변도 기억에 남는다. “저는 뉴욕과 파리 오트 쿠튀르 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그때부터 제가 끊임없이 했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일상에서 입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제 작업에는 최신 기술이 많이 동원되지만 저는 이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아일랜드, 싱가포르, 중국에서 온, 저와 함께 일하는 젊은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그래 한 번 시도해보자’ 하고 말할 뿐이지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가능할 것 같던 프로젝트가 끝나 있습니다. 저의 또 다른 관심사는 세계인 모두가 만족하는 의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본의 전통 기법과 소재를 활용한다고 해서 제 고객으로 일본인만 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일본 전통 기법만 고집하지도 않고요. 옷을 만드는 기존의 방법, 내가 속한 문화를 뛰어넘어 그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저의 한결같은 목표입니다.”

 

 

 

 

 

 

이세이미야케는 패션의 역사에서 그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패션계에 커다란 공헌을 했다. 1999년 미야케는 파리 패션계에서 은퇴했고, 이후 그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는 '나오키 타키자와를 거쳐 '다이 후지와라'가 이어나가고 있다.

 

1990년대에는 많은 젊은 일본 디자이너들이 세계무대를 향해 진출해갔다. 준야 와타나베는 1992년 파리에서 데뷔를 했고 그의 역동적이면서도 유연한 플리츠와 드레이프는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언더커버'의 준 타카하시 또한 그 뒤를 이어갔다. 이처럼 많은 젊은 일본 디자이너들의 성공의 중심축에 이세이 미야케가 존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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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이세이마야케 공식홈페이지

구글사이트

이세이미야케 1999

패션과 의상-이세이미야케

헤럴드경제기사 일부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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