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앙리 도나 마티유 생 로랑(Yves Henri Donat Mathieu-Saint-Laurent)
이브 생로랑(1936년08월01일~2008년06년01일)은 프랑스의 패션디자이너입니다. 프랑스의패션 디자이너이자 이름을 딴 패션, 화장품 브랜드로 약칭은 YSL, 2013년부터 패션 브랜드만 명칭을 '생로랑 파리'로 변경했습니다.
이브 생로랑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습니다. 1957년, 21세의 나이에 파리 최대 오트쿠튀르 하우스인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혜성과 같이 패션계에 등장. 1966년 처음 여성 정장에 바지 정장을 도입하였으며 사파리 자켓을 고안하였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브 생로랑은 어린시절에 병약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고, 그림 그리는 것과 글쓰기, 영화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종이 인형을 만들거나 어머니와 두 명의 여동생을 위해 옷을 디자인 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14세가 되던 해 프랑스의 저명한 예술가 크리스찬 베라르의 무대 디자인과 의상을 접한 후 연극에 매료되어서 무대 세트와 무대 의상을 디자인 하는 등 착작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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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에는 국제 양모 사무국 컨테스트에 참가하여 18세의 나이에 1등을 차지합니다. 이후 '보그'지의 편집장 '미셀 브뤼노프'가 크리스찬 디올에게 그를 소개하여 1955년부터 그의 조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57년 디올이 갑자기 타계하자, 당시 21세 였던 생 로랑이 후계자로 지목되어 디올의 아트 디렉터를 맡게 됩니다.
크리스찬 디올이 죽은 후 그는 21살이라는 나이로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자리를 맏으면서 탄생한 라인이 전 세계 패션계를 강타하게 됩니다.
트라페즈라인(Trapeze-Line)
:어깨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 형태의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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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디올에서 독힙하여 생로랑의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이브 생로랑을 창설하여 파리 패션계를 제패하다시피 합니다.
(관련 내용은 아래 읽다보시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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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
이후 남성복 분야에도 진출하여1981년에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상을 수상합니다. 매트로롤리탄 아트 뮤지엄 의상 협회에서, 생존하는 디자이너로는 처음으로 25년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하며, 클래식 엘레강스에 기초를 두고 단순하면서도 지적으로 우아한 여성다움을 표현, 낮의 일상복으로는 심플하고 입을 만한 스타일을, 이브닝 웨어로는 호화롭고 육감적인 스타일을 전개합니다. 독특하고 멋있는 분위기를 '생로랑 시크'라 하였는데, '모던트림'이나 '슬림 댄드 트림 패션'등으로 불리는 새로운 복장 감각 패션의 세계적인 대두로 거기에 가장 잘 매치하는 것이 생로랑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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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랑은 디자이너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바쁘게 생활한 나머지 종종 극도의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지만, 그의 천부적인 디자인 능력과 재능은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와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2002년에는 자신의 브랜드를 새로운 신진 디자이너에게 내어주고 은퇴를 합니다. 패션뿐만 아니라 화장품 브랜드로도 유명한데, 특히 립 틴트가 영롱한 밸색력과 예쁜 색상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또한 2016년에는 쿠션 파운데이션이 출시되어 영롱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케이스에서부터 이미 많은 여성들에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로고]
80년대 초반까지는 이브 생로랑 본인의 서명을 본딴 필기체 형식의 로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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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전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을 영입하면서 패션부분 로고도 생로랑으로 바뀌었습니다. 화장품 부분은 기존으로 유지했지만, 어쨌든 팬들에게 엄청난 못매를 맞는 중이라는 소식도 종종 들립니다. (이해가 되는게 저도 참 좋아하는 디자인의 가방이나 액서사리가 있지만, 기존 로고가 박혀있으니 뭔가 예전 모델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할까요?..가격또한 만만치 않은 제품들이라 저러한 반응들이 있다는게 딱히 놀랍지 만은 않습니다)
이후 2016년 에디 슬리먼은 생로랑은 떠난다고 발표하여, 생로랑에는 또 다른 후임자가 정해지게 됩니다. '베르사체'의 세컨브랜드인 '베르수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맏고 있는 '안소니 바카렐로'가 에디 슬리먼을 이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자리 잡게 됩니다.
스테파노 필라티 |
에디슬리먼 |
그리고 그의 곁을 한결 같이 지킨 '베르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할수가 없습니다. '베르제'는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인 이브 생로랑의 동성 연인이자 50년 지기였다. 베르제는 1958년 생로랑이 크리스찬 디올에서 첫 쇼를 할 때 그를 만났다. 서적 판매상이었던 베르체는 그쇼에 왔다가 생로랑과 마음이 통했다. 뛰어난 디자이너였지만 비지니스엔 '젬병'인 생로랑에게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주고 평생 사업을 키워준 게 베르제였다. 친구가 술과 마약에 허우적 댈 때마다 붙잡아 준 것도, 생로랑 사후 둘이 수집했던 미술품들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아 약 7000억 원을 사회에 환원 한 것도 그였다. 사업적 수완이 뛰어난 피에르 베르제의 경영 능력과 이브 생 로랑의 뛰어난 디자인 능력이 더해진 이브 생로랑 하우스는 파리 패션계를 정복하기 시작합니다. 1962년 1월 대망의 첫 컬렉션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미국 잡지 '라이프'는 "이브 생 로랑은 샤넬 이훙 최고의 슈트 메이커"라며 호평하였습니다. 생로랑은 1963년에는 보이시한 룩을 발표하였는데, 당시 여성해방과 사회진출의 문화에 맞아 여성들에게 복식의 자유로움을 선사하게 됩니다.
[한번에 훓어보기]
1936년 8월 1일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 오랑에서 출생.
1957년 - 디올이 생을 마감하면서 뒤를 이어 디올의 수석디자이너가 된다.
1958년 - 첫 컬렉션에서 스커트의 길이를 짭ㄹ게 한것이 젋은층에게 호평받음.
1961년~1962년 - 자신의 동료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의 부띠끄를 설립
1960년대 후반 - 사파리 쟈켓과 점프슈트, 실크 시폰드레스등을 선보이며 오늘날 많이 알고 있는 시스루 룩의 시초가 되는 매우 파격적인 의상 만듬.
1970년대 -남성복라인도 런칭.
1983년 -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패션디자이너 최초로 입생로랑의 개인전개최
1985년 - 레종 도뇌르 훈장 수여받음.
1990년 - 이브 생로랑이 새로운 컬렉션을 선보이지 못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자 그의 건강 악화설이 끊이없이 제기됩니다.
1999년 - 구찌그룹이 이브 생 로랑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여 나누어 경영을 하다가 2002년 구찌 그룹이 이브 생 로랑을 완전히 인수하였습니다.
2008년 6월 1일 - 이브 생로랑은 뇌종양으로 인해 71세의 나이로 별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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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톰포드에 이어 2005년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가 맡아 2012년까지 브랜드를 이끌었으며, 아르마니 남성복과 미우미우에서 경력을 쌓은 스테파노 필라티는 특유의 클래식한 감성과 이브 생로랑을 예우하는 태도로 많은 이들의 호감을 샀다고 합니다. 그후, 2012년 월, 전 디올 옴므의 디자이너로 유명한 에디슬리만이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됩니다. 이와 함께 브랜드 명도 '이브 생 로랑'에서 '생 로랑 파리'로 변경되었습니다.
인터뷰에 따르면 에디슬리만은 '생 로랑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생 로랑이 럭셔리 한 전통을 되찾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브 생 로랑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의 정신을 되살리고 싶었다' 라고 답했다 합니다.
파리에 위치하고 있는 이브 생 로랑 박물관
"나는 우아함(Elegant)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단어와 같이 구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남성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 여성을 매력적(Appealing)이라고 생각한다. 매력(Appeal)이라는 단어가 우아함(Elegant)이라는 단어를 대체하였다. 모든것이 바뀌었다. 옷입는 방식보다 삶의 방식이 중요하다."
- 이브 앙리 도나 마티유 생 로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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