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할때의 '나'와 일 외적일때의 '나'는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아마 누구나 많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일할 때의 나는 회사에 소속이되어 있는 사람이라 출근시간부터 퇴근시간까지는 최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접어두고 일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는 마인드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된 건, 학교 졸업 후 첫 직장 입사 시 교육연수원에서 1달간 신입트레이닝 받으면서 생긴 세뇌같은 문장이다. 그 당시에만해도 학습하던 습관들이 남아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첫 직장의 설레임과 조금은 긴장되었던 사회생활에 대한 기대와 동경 같은 마음에 신입교육을 해주시는 대선배님들, 혹은 인사팀들의 말을 학습하듯이 머리속에 집어넣을 수 밖에 없었고, 무슨 시험이나 칠 것 처럼 반복하고 외우기까지 했다. 심지어 신입들에게 조금은 여유로울수 있는 밥을 먹는 점심시간 조차에도 회사의 '사가(학교로 치면 교가)'가 스피커로 반복해서 흘러나오는게 아닌가...우리는 어리둥절하게 아..역시 사회생활도 학교랑 비슷하구나..하면서 하루 이틀은 불편해 했지만 어느 듯 점점 그 기계처럼 딱딱한 생활들이 몸에 익숙해져갔다. 남자들의 군대와 비교할 건 못되지만, 여자인 내가 태어나서 수학여행 이후 처음 겪어보는 아주 길고 긴 체계적인 단체 생활이었다.
[AM]
-5시 40분 집합 후 연수원 광장 2바퀴 조깅. (내 기억으로는 당시 연수원이 내가 입사했던 회사의 연수원이기는 했지나 타 회사 신입들 교육원으로도 빌려주면서 활용을 한다고 들었었는데 우리가 교육받을 당시에도 S전자 신입직원들이 옆건물에 교육받으러 왔다고 얘기를 들어서 조깅할 때 항상 마주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분들 역시 길고 긴 조깅 코스를 많이 힘들어 했던 기억이 아주 생생하다.)
나는 학창시절 가장 자신없어 하던 부분이 체육이었다. 체력장은 말도 못한다. 100미터 달리기는 그냥 걷는게 나을 정도다. 체력장하면서 친구랑 둘이 뛰는데 정말 너무 차이나게 뛰고 싶지 않아서 중간 쯤에서 더 빨리 달려보려고 힘내다가 오히려 힘이 풀려버려 욕심이 과한 가속이 붙은 상태에서 넘어져서는 무릎이 엉망이 된 적도 있었다. 하.. 그런 내가 아침마다 조깅을 했으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6시 30분 조식
이 또한 정확하게 기억난다. 사람을 저렇게 뛰게 해놓고 밥을 30분만에 먹으란다. 밥이고 뭐고 처음에는 배가 땡기고 먹을 수도 없는데 이 사람들이 정신이 나갔나 싶었다. 이 조차도 하루 이틀 지나고나니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악으로 깡으로 다 버티고 뭐든 참으면서 다 해내게 된다는 것. 아침식사가 끝나고나면 1시간 하루 일과 시작 할 준비 시간을 준다. 여자들이고 욕실도 돌아가며 사용해야하니 아마도 이 시간은 넉넉하게 준 것 같다.
-8시 교육장 입실, 하루가 시작된다.
주 내용은 회사 관련 된 내용들이고, 업무수행 내용이다. 중간중간 외부 지점에 근무하는 분들을 모셔서 업무 얘기를 듣는 시간들도 있고, 해외에서 어렵게 모셔온 분들도 한두번씩 수업일정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당시의 한달간 일정은 정말 '세뇌'라고 말하는게 딱 맞는 것 같다. 어느 회사든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사람이 본인의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잘하도록 만들려면 철저하게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건 당연하겠지만, 음...시간이 이렇게 지나고 한번씩 동기들과 얘기를 나눠 볼때면 우스게 소리로 솔직히 별 소리가 다 나오긴 한다.
그때 그렇게 무섭게 교육을 받아서일까..아니면 그러한 상태로 그런 업무를 오랜 기간해서일까 비슷한 구조의 업무를 하는 곳을 가게되면 나도 분명 편안함을 누리거나 쉬려고, 혹은 목적에 의해서 온건데 나는 이미 일하는 사람들을 먼저 살펴보거나 그들의 행동들을 보고있다. 가령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곳은 그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눈빛이라고 할까...이사람이 일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지 말이다...나 역시도 피곤하거나 몸이 아프거나하면 아침에 좀 더 누워 있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업무는 누구 한명이 빠지는 순간 그냥 넘어가버리는게 아니라 남은 다른 동료가 나의 몫을 해내야되고 나로 인해 오늘 쉴 수 있던 다른 이가 부득이하게 출근을 해야하는 경우가 생기는 직업이라 몸 관리는 필수고 왠 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내게 아픈게 아니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오랜시간 구두 착화로 발가락이 아닌 발바닥에 티눈이 생겨서 레이저로 1.5센치 정도 수술을 했던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 8일 동안 걷지 말라고 말했었다. 힘을 주면 실밥이 풀어질 수가 있다고..하지만 8일이 왠말인가.. 우리의 업무에서 결혼하는 누군가가 있어도 최대 7일의 휴가만서 사용을 한다. 그 좋은 날 마저도.. 하물며 8일이라니...상상할 수 없는 기간이었다. 우선 발에 붕대도 감겨있는 상태고 회사 정장 유니폼에 구두도 신을 수 없는 상태여서 2일은 휴무를 내고 쉬었다. 3일째 되는 날은 압박붕대로 바꿔서 최대한 얇게 조여매고 출근을 했다. 걷는 폼이 좀 우습긴 했지만 발 뒤꿈치로 내딛으니 나쁘진 않았다. 사람들이 괜찮냐고 걱정해 주었지만 그렇게 걱정해주는 나의 상태에 내가 오히려 좀 부끄러웠다.
다행히 일 하는 장소에서는 크게 움직임이 없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훨씬 더 좋았다. 순탄하게 스케줄도 잘 돌아가고 마음이 편해졌다. 내게 아프다는 건 최소한 걷지못할 정도의 아픔이 오는 것이었다. 이런 마음도 초창기 때 생긴 것 같다. 물론 집에 오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나도 40이 되어간다. 그때와는 현저하게 체력도 떨어지지만 문제는 정신 상태 바꾸는게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주위에 나보다 나이 많은 언니들은 '요즘 누가 너처럼 무식하게 일을 하니 적당히 해. 회사에서 알아주지도 않아. 너 그러다가 병나.'..대부분이 이렇게 얘기하곤 한다. 그러면서도 본인 사람 필요하면 '아휴..너 같은 직원 하나 들어오면 좋겠다' 라고 하는 건 뭔가...어쩌라는 거지?..음..
어릴때는 시키니까 그렇게 교육을 받았으니까 했어야만 했고, 중후반 넘어오면서는 몸에 배어버려서 기계처럼 그냥 일을 했고, 지금은 남들이 그리하다가 죽는다 하니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다. 난 무엇때문에 그렇게 달려왔고 한길만 보고 살았는지, 되돌아보면 그렇다 할 추억 하나 없고 소소한 공연, 음악, 책..이런게 전부이구나 싶어서 요즘은 회의감이 든다고 할까...나도 '나'라는 이미지, '너는 원래 집,회사잖아'..라는 그 틀에서 벗어나면 바르지 않다라는게 싫어서, 그런 시선들이 싫기 때문에 어쩌면 참고 살고 있는게 아닌지...아니면 그냥 그렇게 그러다보니 이제는 그 생활들이 익숙해져 버려 그냥 나 자신이 되어버린건지도 모른다...
요즘 너무 생각이 많아져 버려서 복잡하기만 하구나..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주위의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살아 볼 용기가 내게도 생길지...그냥 내가 요즘 지쳐버려 온갖 생각이 드는건지...잘 모르겠다.
끄적끄적 혼자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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