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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디자이너&브랜드이야기

크리스찬 디올

by 파란하늘정원 2017.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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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

 

 

크리스챤 디올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오랜시간 인연이 있기도 한 브랜드여서 간단한 문서 작업만 해 오던 내가 그 동안의 취미생활로 티스토리를 시작하고자 각오를 다지면서 첫 글을 의미있게  시작하고 싶어 디올을 선택해 보았다. 좋아하는 이유는 그냥 단순하다. 디올...하면 새하얀 매장의 느낌이 우선 떠오른다. 처음 그 느낌이 너무 좋았기도 했고, 당시의 설레임도 여전해서 좋다. 치열한 생존사회 같은 요즘이지만 단순히 나를 초심으로 돌려놓아주는 유일한 장소라고나 할까...그래서 이 브랜드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명품...사실....돈 있으면 누구나 갖고싶어 한는건....아니라고 말하지만 내심 대부분이 갖고싶어할꺼라 생각한다. 수많은 브랜드를 직업으로 매일 마주치다보니 딱히 대단해 보이는 것 들은 없는 것 같다.

솔직히 저 가방이나 옷, 신발이 저 매장에 있으니까 우와~.하고 사람들이 감탄사를 쏟아내며 지나가지..

로드샵이나 일반 가게에 디스플레이 되어있으면 과연 감탄사를 쏟아내며 줄서서 사려고하는 사람이 있을까...하고 생각해 본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럴때면 역시나...디자이너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님은 확실한 것 같고, 우리들이 그냥 쉽게 생각하고 지나치는 모든 것들을  얼마나 섬세한 감성으로 바라보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랑빌 저택 - 디올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

 

 

[그랑빌 저택]

디올의 꽃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그랑빌 저택의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그랑빌 저택은 20세기 초 디올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으로 훗날 크리스챤 디올의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997년, 그량빌 저택은 크리스챤 디올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크리스챤 디올 부틱 1946年]

크리스챤 디올의 창립자인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은 평범한 보통 남자아이들과는 달리 꽃과 그림, 의상에 관심이 매우 많은 소년이었다. 섬세한 감성을 바탕으로 1928년, 프랑스 파리에 작은 화랑을 열었으나 대공황으로 인해 곧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형편이 어려원진 디올은 자신의 일러스트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크리스챤 디올 부틱 1946年]

1941년, 디올은 패션하우스인 뤼시앤를롱에 취직했고, 이곳에서 만난 피에르발망(Pierre Balmain)의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5년뒤, 40세가 넘은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만들어 파리 몽테뉴 거리에 크리스챤 디올 부티크를 열었다.

 

 

 

 

 

 

[크리스챤디올의 첫 컬렉션1947年]

꽃을 좋아한 디올은 자신의 첫 컬렉션 이름을 꽃봉오리를 똣하는 '코롤라'라고 지었다. 당시 프랑스는 전쟁직후여서 갑갑한 옷이 전부였고, 프랑스 여성 대부분이 옷을 배급받아 입어야했다. 이때 디올은 꽃처럼 만개한 디자인의 바디라인을 강조한 옷을 선보이며 여성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사진출처 :네이버검색)

 

 

 

[뉴룩-New Look의 탄생]

디올의 첫번째 털렉션이 바로 패션사에 길이 남을 '뉴룩'이다. 뉴룩은 패션매거진 (하퍼스바자)의 편집장이었던 카멜 스노우가 새로운 디자인과 혁신적인 스타일을 선보인 이 쇼를 보고 'It's such a New Look!'이라고 말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첫 컬렉션 이후, 다양한 실루엣을 발표하며 패션계에 역사적인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1950년에는 볼륨을 상체에 집중한 '버티칼',1951년에는 둥근 시루엔으로 허리를 해방한 '오벌'라인~이후에는 '시뉴에스;와 '튤립','H','A','Y'라인 등을 발표했다.

 

 

 

 

 

 

[크리스찬 디올의 비지니스 감각]

크리스챤디올은 패션사업에 라이센스 개념을 도입했으며 수만은 자회사를 만들었다. 1949년, 기성복라인인 프레타포르테를 만들고, 향수, 모피, 담배, 스타킹, 넥타이 등에 크리스챤디올의 이름을 넣을 수 잇는 권리를 팔았다. 1950년대에 디올은 8개 회사외 16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전세계에 1,7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패션 제국이 되었다.  1951년, 디올은 프랑스 전체 소득의 5%를 수출의 50%를 차지했고, 창립자인 그 공을 인정받아 1956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1957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한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해 디올은 10주년 기념 컬렉션을 앞두고 52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디올의 사망 후, -크리스챤 디올은 현재 LVMH그룹의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에 의해 인수되었다. 그리고 1996년, 아르노 회장은 오래된 패션 하우스라는 이미지를 혁신하기 위해 '젊은 천재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를 영입해 디올에 창의적이고 젊은 기운을 불어넣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2001년, 32세 에디 슬리먼이라는 젊은 디자이너를 합류시쳐 디올 옴르를 런칭하였다. 디올 옴므는 남성복 트렌드를 필림핏 스타일로 완전히 바꿔놓았고, 패션계의 황제라 불리는 칼라거펠트는 디올옴므슈트를 입기위해 42KG까지 감량했다고도한다.

 

 

[Lady Dior As Seen By]

크리스챤 디올의 역사는 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전세계 순회전시인 'Lady Dior As Seen By'는 2011년부터 시작됐으며, 50여명의 비주얼 아티스트들과 포토그래퍼들이 크리스챤 디올의 아이콘인 레이디디올 핸드백을 자유롭게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크리스챤 디올의 플래그십 스토어]

- 청담동에 위치한 하우스 오브 디올 -

 

 

[하우스 오브 디올]

2015년, 크리스챤 디올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인 '하우스오브디올'을 오픈했다.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하우스오브 디올은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크리스찬 드 포르트잠바르크와 피터 마리노가 각각 건축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하우스 오브 디올의 외관은 크리스챤 디올의 아틀리에에서 만든 캔버스의 천의 소재와 실루엣,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 되었으며, 하늘하늘한 패브릭을 연상시킨다. 실내공간에는 아티스트 이불의 대형 설치 작품과 프랑스 조각가 클로드 랄란의 나뭇잎 벤치등 예술 작품들이 곳곳을 메우고 있다.

 

 

 

[장미에 대한 사랑]

디올이 가장 사랑한 꽃은 그랑빌 저택의 정원에서 어머니가 키우던 장미였다.

디올의 첫컬렉션에서도 활용된 장미는 크리스챤 디올에 지속적인 영감을 주며 오늘날 주얼리로 재해석되고 있다. 꽃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디올에게 향수는 최고의 액세사리였다.

 

 

 

 

1947년, 크리스챤 디올이 오트쿠튀르 의상과 함께 미스디올을 선보인 이후, 크리스챤 디올의 향수는 최고의 원료와 명성으로 전설이 되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디올의 퍼퓨머 크리에이터 프랑소와 드마시가 미스디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레이디 디올 Lady Dior]

1994년에 탄생한 레이디 디올은 크리스챤디올의 상징적인 모델이다. 이 백은 일명 '슈슈'라고 불렸고, 2년 뒤 파리에 방문한 영국 다이애나비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레이디 디올'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여전히 수많은 셀럽들에게 인기있는 레이디 디올..우리나라에서는 연애인들이 가금 착용하고 나올 때 관심을 받거나, 혼수품으로 종종 구매하시는 분들이 있기도 하지만 외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갖고싶어하기도하고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있는 아이템이다.

 

 

 

 

[루즈디올 Rouge Dior]

1953년, 루즈디올은 '당신의 미소에는 그에 맞는 컬러가 필요합니다. 디올이 여러분의 피부에 걸맞은 드레스를 선사합니다. 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출시 된 오벨리스크 모양의 뚜껑으로 제작된 루즈는 굉장한 인기를 얻었었다. 2003년 제작된 루즈디올999는 '가장 디올다운 레드'라고 평가받으며 시그니쳐 아이템으로 자리잡기까지 했었다.

 

 

 

 

 

내용 출처 : 최고의 명품, 최고의 디자이너 / 명품의 세계 / 크리스챤 디올 공식홈페이지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검색 / 다음 이미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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